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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록

좋아서 시작했던 일

2026-09-23 에세이일상단상자기이해

페이스북에서 짧은 영상을 하나 봤다. 책 《다크 심리학》의 한 장면을 다시 풀어 놓은 이야기였다. 줄거리는 단순했다.

어떤 집 앞에서 아이들이 매일 떠들었다. 주인은 소리치지 않았다. 아이들 앞에 만 원을 내밀며, 내일도 와서 떠들어 달라고 했다. 아이들은 좋아서 다시 왔다. 다음 날에는 오천 원, 그다음 날에는 천 원을 줬다. 아이들이 화를 냈다. 이 돈 받고 떠들 수는 없다고. 그리고 오지 않았다. 마당은 조용해졌다.

처음 봤을 때는 잔꾀처럼 느껴졌다. 다시 보니 잔꾀보다 규칙이 바뀐 장면 같았다. 아이들은 처음부터 떠드는 일을 싫어하지 않았다. 좋아서 하던 일에 값이 붙고, 그 값을 다른 사람이 정하기 시작하자, 같은 소리가 갑자기 손해가 된 것이다. 싸움을 이긴 것이 아니라, 싸움의 판을 바꾼 쪽에 가깝다고 느껴졌다.

공직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다. 불편해서, 혹은 그냥 그게 맞아서 집어 든 일이 있다. 제안서 한 장, 당직 때 한 번 더 돌아본 복도, 주말에 나간 봉사. 그 일들에 실적과 수당과 직함이 붙으면, 그만두는 일이 게을러 보이기 시작한다. 일의 내용은 그대로인데, 이유를 누가 들고 있는지가 달라진 것이다.

도시를 움직이는 돈도 비슷한 자리를 차지할 때가 있다. 지원금은 사람을 부를 수 있다. 다만 사람이 남는 이유는 지원금이 아닐 때가 많다. 값이 이유를 대신하는 순간, 값이 끊기면 이유도 같이 끊긴다. 아이들과 마당의 이야기와, 숫자가 그리 멀지 않아 보였다.

보상이 나쁘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월급은 당연히 있어야 하고, 수고에 값이 따르는 것도 맞다고 생각한다. 내가 걸리는 지점은 다른 데 있다. 좋아서 시작했던 일의 첫 이유를, 내가 아직 알고 있는지. 값을 정하는 손이 바뀌어도, 그 일이 내게 남는지를 가끔은 물어보게 된다.

만 원을 받기 전에 그 일이 얼마였는지, 한번 짚어 보면 어떨까 싶다. 그 금액이 사라져도 남을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는 아직 내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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