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폰이 기록한 것들 — 2021년 초등학생 폰토그래퍼 공모전
2021년 겨울, 제천의 초등학생들에게 이런 숙제가 주어졌다. 스마트폰을 들고 집 안을 찍어라. 코로나로 달라진 것들, 집콕하면서 비로소 보이게 된 것들, 그리고 이 시간을 버텨내기 위해 내가 준비한 것들을.
'폰토그래퍼(Phontographer)'. 폰(Phone)과 포토그래퍼(Photographer)를 합친 이 말이 공모전의 이름이었다. 제천시와 제천교육지원청, 그리고 지역 민간단체가 함께 기획한 이 행사의 총예산은 940만원이었다. 거창한 사업이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쥐어주고, 주제를 정해주고, 구글폼으로 접수받는 구조였다.
아이의 눈이 어른의 눈보다 낮다
코로나 시대를 기록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통계, 보고서, 언론 기사, 전문가 분석.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공통적으로 놓치는 것이 있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본 코로나다.
어른들은 코로나를 거시적으로 읽는다. 확진자 수, 거리두기 단계, 경제 타격. 하지만 초등학생에게 코로나는 훨씬 구체적이다. 마스크를 쓰고 밥을 먹는 것, 친구 집에 못 가는 것, 할머니 댁에 명절에 못 간 것, 학교 대신 태블릿 화면으로 선생님을 보는 것. 그 구체성이 역사의 결이다. 나중에 "그때 어땠어요?"라고 물었을 때, 숫자보다 이 사진 한 장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공모전 주제 중 하나인 "집콕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문구가 오래 머릿속에 남는다. 바깥으로만 향하던 시선이 갑자기 집 안으로 향하게 됐을 때, 아이들은 무엇을 발견했을까. 베란다에서 처음 키워보는 방울토마토, 엄마가 매일 쓰는 앞치마의 무늬, 아빠가 재택근무하며 놓아둔 커피잔. 아이의 카메라는 그런 것들을 찍었을 것이다.
기록이 놀이가 될 때
이 공모전의 또 다른 결은 '가족과 함께하는 놀이'였다. 아이가 사진을 찍으려면 어른의 도움이 필요하다. 주제를 같이 읽고, 뭘 찍을지 같이 고민하고, 각도를 잡아주기도 한다. 그 과정이 놀이다.
코로나는 가족을 집 안에 가뒀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쓸지는 각 가정의 선택이었다. 이 공모전은 그 시간에 하나의 방향을 제안했다. 카메라를 들고 집 안을 탐험하자고. 익숙한 것을 낯선 눈으로 보는 연습을 하자고. 그게 사진이라는 매체의 본질이기도 하다.
지역이 스스로 기록하는 힘
이 기획에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940만원이라는 예산이다. 크지 않다. 그런데 이 예산으로 제천 초등학생 수백명과 부모들을 움직이고, 수상작을 남기고, 한 시대의 기억을 지역 자산으로 보존할 수 있다.
대부분의 지역 문화사업은 외부 강사를 부르고, 공연을 유치하고, 콘텐츠를 외부에서 가져온다. 이 공모전은 반대다. 제천 아이들이 제천의 일상을 찍고, 그것이 제천의 콘텐츠가 된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같은 동네에 있다. 지역이 스스로를 기록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다.
행정안전부가 강조하는 '주민 주도형 사업'의 본질이 이것이다. 주민이 기획하고, 주민이 참여하고, 그 결과가 지역의 기억으로 남는 것. 거창한 구호 없이도 이 공모전은 그것을 해냈다.
코로나 시대의 제천을 기억하고 싶다면, 그 아이들의 사진이 어딘가에 보존되어 있어야 한다. 수상작이 시청 홈페이지에 올라가고, 블로그에 게시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제천 시립도서관이나 아카이브에 디지털 자료로 남아야 한다. 아이들이 어른이 됐을 때 꺼내볼 수 있는 형태로.
작은 공모전 하나가 지역의 기억이 되는 방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도시경영학적 관점
940만원으로 200명 넘는 아이들을 참여시켜 한 시대의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외부 콘텐츠를 구매하거나 전문 사진작가를 섭외하는 방식과 비교가 안 되는 효율이다. 그런데 이 사업의 진짜 가치는 비용 효율에 있지 않다.
아이들이 찍은 사진이 5년 뒤, 10년 뒤에도 꺼내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상작이 시청 홈페이지 게시로 끝나면 행사로 남는다. 시립도서관에 디지털 자료로 등록되는 순간 기록이 된다. 그 차이를 처음부터 설계해 두었느냐가 아카이브의 생존을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