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 몇 그루와 문구 하나 — 청전동 술집거리, 공간이 만드는 분위기
2022년 나는 한 장짜리 제안서를 냈다.
일명 청전동 술집거리, 정확히는 청전동 1054번지 일원. 주점들이 촘촘히 들어선 이 구역은 야간 유동인구가 많고, 보행 공간이 협소해 크고 작은 마찰이 반복되는 곳이다. 특별히 다른 성격의 사람들이 모이는 게 아니다. 인도가 좁고, 조명이 어둡고, 공간 자체가 마찰을 유도하는 구조인 것이 핵심이다.
명절이면 이 구역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이 경찰서와 지구대의 야간 출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이미 알려진 패턴이다. 지역 주민들도 야간에 이 거리를 피하는 경향이 생겼고, 청소년들에게도 그 인식이 자연스럽게 전해졌다. 그러나 이 패턴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공간 조건이 바뀌면 행동도 바뀐다.
문제의 핵심은 공간이다. 도로는 좁고, 인도는 더 좁다. 차도와 보도 사이에 있는 가로수가 그나마 남은 보행 공간을 잠식하고 있다. 술에 취한 사람들이 비좁은 인도 위에서 서로 부딪히는 상황은, 어찌 보면 구조가 만들어내는 필연이다. 인도가 넓었다면, 서로 눈을 마주칠 일도, 어깨를 치고 지나칠 일도 절반은 줄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가로수를 정리하거나, 차로를 일방통행으로 전환해서라도 보행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먼저다. 보행환경 개선은 인문학적 감수성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 안전의 기본 인프라 문제라고 생각한다. 넓어진 인도 위에 밝은 조명이 들어오고, 재치 있는 문구 하나가 걸려 있다면, 그곳의 분위기는 분명 달라진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 "알고 보면 우리는 모두 친척" — 실없어 보이지만, 사람은 눈에 들어오는 문장 하나에도 마음이 흔들리는 존재다. 싸우려던 주먹이 멈추고 피식 웃음이 나온다면, 그것으로 이미 절반은 성공이다.
범죄 예방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사후 단속이고, 다른 하나는 환경 설계다. CCTV를 확보하러 달려가는 것은 전자이고, 인도를 넓히고 조명을 바꾸는 것은 후자다. 도시 범죄학에서 이미 오래전에 검증된 이론이지만, 현장 행정에서는 사후 대응이 우선되는 경향이 있다. 예산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로 보인다.
행정의 역할이 늘 거대한 사업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로수 몇 그루를 정리하는 것, 차로 방향 하나를 바꾸는 것, 문구 하나를 붙이는 것. 그 작은 결단이 쌓이면 도시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4년 전 제안서의 마지막 줄에 이렇게 썼다. "제천시 이미지 제고 — 센스 있는 도시." 지금도 그 방향은 맞다. 시작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을 듯하다.
도시경영학적 관점
사전 예방보다 사후 단속이 우선되는 이유는 예산이 없어서도 아니고 행정이 몰라서도 아니다. 사후 단속에는 담당 부서가 명확하고, 사건이 발생하면 자연스럽게 예산이 잡힌다. 반면 환경 개선은 누가 먼저 나서느냐의 문제가 된다.
가로수 정비와 보행로 확장, 조명 교체는 2천만~3천만원 수준이면 가능한 일이고, 시행 1년 뒤 해당 구역 112 신고 건수 변화를 추적하면 효과 확인도 어렵지 않다. 숫자가 나오면 다음 구역으로 넘어갈 근거가 생긴다. 시작이 어려울 뿐, 방법은 이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