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안제도 개선을 제안한다
지방행정 현장에서 오래 일하면서 내부 제안을 여러 차례 해본 적이 있다.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담당부서 검토 단계를 통과하지 못하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나는 그 공통점을 찾기 시작했다. 문제는 제안 내용의 미비가 아니라, 심사 구조 자체에 있었다.
현행 공무원 제안제도에서 제안의 채택 여부는 사실상 담당부서의 사업 추진시 검토 의견에 달려 있다. 그런데 담당부서 입장에서 제안이 채택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새로운 업무 절차의 도입, 기존 방식의 변경, 추가적인 행정 부담의 발생이다.
담당부서는 제안을 검토하는 주체이면서, 동시에 그 제안이 채택될 경우 직접 그 업무를 추진해야 하는 당사자다. 이해충돌 구조가 제도 안에 내장되어 있는 셈이다. 이 상황에서 해당 부서의 적극적 검토와 긍정적 의견을 기대하는 것은 개인의 선의와 적극성에 기대는 일이지, 제도로 이어지기는 힘든 게 사실이다.
전국 지자체 평균 제안 채택률이 10% 내외에 머무는 것은 이러한 구조의 결과다. 채택률이 낮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왜 낮은지에 대한 피드백이 현장에 닿지 않는 것이 문제다. 이 피드백 부재가 "제안해도 달라지는 게 없다"는 인식으로 굳어지고, 아이디어를 가지고 제안하는 사람들이 점점 입을 닫게 만든다. 이 흐름을 되돌리려면 채택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세 가지 방향을 제안한다.
첫째, 시민·외부위원회 우선 검토. 제안의 1차 검토 권한을 담당부서에서 시민·외부전문가로 구성된 독립 심사위원회로 이관한다. 담당부서는 현장 실무 적합성에 한정한 의견서를 제출하되, 채택 여부 결정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이해충돌 구조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심사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방안이다.
둘째, 채택 시 인센티브 및 인력 지원 연계. 추가 업무가 수반되는 제안이 채택될 경우 추진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을 담당부서에 지원한다. 제안 채택이 업무 부담이 아닌 인력 확보의 기회가 되는 구조를 설계하면, 담당부서의 이해관계가 역전된다. 제도적 강제 없이도 제안을 환영하게 만드는 설계다. 제안자에게는 가점 등 실질적 인센티브도 함께 강화한다.
셋째, 불채택 시 구체적 사유 제공 의무화. 불채택 시 구체적 사유, 보완 가능 여부, 재 제안 가이드를 서면으로 의무 통지하도록 한다. 제안자가 무엇이 부족했는지 알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채택률보다 제안의 질을 단계적으로 높여가는 장기 전략이기도 하다.
세 가지 방안 중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두 번째다. 담당부서를 설득하거나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관계 구조 자체를 바꾸는 접근이기 때문이다. 현재 구조에서는 제안 채택이 담당부서의 업무 증가로 이어져 소극적 검토를 낳는다. 개선 구조에서는 제안 채택이 인력 지원으로 연결되어 담당부서가 자발적으로 검토하게 된다.
채택 제안의 복잡도와 업무량에 따라 인력을 한시 파견하는 방식이다. 담당부서는 제안 덕분에 인력을 얻고 성과를 얻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경험이 반복되면 제안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다. 제도가 사람을 바꾸는 게 아니라, 구조가 행동을 바꾸는 셈이다.
제안제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은 제안자의 의지 문제가 아니다. 검토하는 사람이 적극적으로 나설 유인이 없는 구조가 문제에 가까웠다. 구조가 바뀌면 행동도 따라올 수 있다. 그 변화는 작은 제도 개선에서 시작될 수 있다.
도시경영학적 관점
현행 제도에서 담당부서는 제안을 채택할수록 업무가 늘어난다. 이 구조가 소극적 검토를 낳는다는 것은 담당자를 비난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같은 상황에 놓이면 같은 행동이 나온다. 채택 시 추진 인력을 지원하는 구조로 바꾸면 이해관계가 역전된다. 제안이 인력 확보의 기회가 되는 순간, 제도는 작동하기 시작한다.
전국 지자체 평균 채택률이 10% 내외라는 숫자보다, 불채택 사유가 제안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심각한 문제다. 이유를 알아야 다음 시도가 가능하고, 시도가 반복되어야 제안의 질이 올라간다. 독립 심사위원회가 이상적이지만, 불채택 사유 의무 통지 하나만 바꿔도 제도는 달라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