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목록
행정·정책

화분 하나의 무게 — 입석마을기업

2026-06-06 지역공동체마을기업사회적경제

시멘트 공장 옆에서 시멘트로 먹고산다는 것

입석마을은 아세아시멘트 제천공장과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65세 이상 비율이 절반 이상인 초고령 마을이다. 마을 주민 상당수가 이미 공장 근무 경력이 있다. 이 세 가지 사실이 겹치는 지점에서 이 사업이 시작된다.

내가 제안하는 제품은 다음과 같다. 소형부터 대형에 이르는 시멘트 화분과 직접 키운 식물 조합 세트로 완제품을 생산하는 방식이다.

남성근로자는 화분을 생산하고 여성근로자는 식물을 재배한다. 약 20명 정도의 인원이다. 큰 숫자처럼 보이지만, 1차년도는 시범 운영에 집중하는 구조이고, 아세아시멘트의 원자재 지원과 CSR 예산이 초기 비용을 상당 부분 흡수한다고 가정하고 있다.

화분 안에 무엇을 심을 것인가

'시멘트 화분과 다육식물 조합 세트'다. 시멘트 용기를 만드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그 안에 직접 키운 식물을 담아 완제품으로 판다는 구상이다. 이 부분이 단순한 공예품 판매와 이 사업을 가르는 지점이다.

특히 다육식물은 마을기업의 식물 재배 품목으로 여러 이유에서 적합하다.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되고, 햇볕만 충분하면 별다른 기술 없이도 잘 자란다. 노지나 비닐하우스 어느 환경에서도 재배 가능하고, 소규모로도 시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마을의 고령 주민들에게 맞다. 무거운 시멘트를 다루기 어려운 분들도 모종을 심고 물을 주고 잎꽂이로 번식시키는 일은 할 수 있다. 같은 마을기업 안에서 역할이 자연스럽게 분리된다. 시멘트를 만지는 사람과 식물을 키우는 사람이 다르더라도, 완성품에선 하나로 합쳐진다.

다육식물 외에도 허브류나 소형 관엽식물을 함께 키우면 품목 다양성이 생긴다. 로즈마리·타임·민트 같은 허브는 주방에서 바로 쓸 수 있어 실용 선물 수요가 있고, 소형 고무나무나 스킨답서스는 공기정화 식물로 수요가 꾸준하다. 시멘트 화분의 질감과 이런 식물들의 녹색이 어우러지면, 인테리어 소품으로서의 완성도가 한층 높아진다.

중요한 것은 재배와 제조가 같은 마을 안에 있다는 점이다. 외부에서 식물을 사다 심는 것과, 마을 텃밭에서 직접 키운 식물을 화분에 담아 파는 것은 이야기의 무게가 다르다. 전자는 유통이고 후자는 생산이다. '입석마을에서 만들고, 입석마을에서 키운' 제품이라는 서사는, 소비자에게 그 화분이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어떤 장소의 기억을 담은 것으로 느끼게 한다. 그 감각이 재구매와 입소문을 만든다.

물론 식물 재배는 시멘트 제조보다 변수가 많다. 계절, 날씨, 병해충, 판매 시점과 생장 주기의 불일치. 이런 리스크를 관리하려면 재배 일지와 수급 계획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식물 재배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시멘트 제품 판매가 궤도에 오른 후 조합 세트 비중을 점진적으로 늘리는 것이 현실적이다. 작게 시작해서 재배 노하우를 쌓고, 안정적인 수량이 확보되는 시점에 본격화하면 된다.

실무자로서 보이는 것들

이 계획의 강점은 세 곳에 있다. 첫째, 원가 구조다. 주원료인 시멘트를 공장에서 직접 지원받는 구조가 성립하면, 소재 비용이 거의 없는 사업이 된다. 이건 여간해서 나오는 조건이 아니다. 둘째, 체험 프로그램이다. 1회 2만원, 월 4회 운영이라는 계획은 소박해 보이지만, 안정적 부수입이 된다. 학교 단체 방문, 가족 체험 수요는 실제로 존재한다. 셋째, 서사다. "공장 분진 속에서 살아온 어르신들이 그 시멘트로 화분을 만든다"는 이야기는 언론이 좋아하는 구조다. 홍보비가 없어도 기사 한 편이 전국의 소비자를 만든다.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 초고령 인력 중심의 생산 구조에서 품질 균일성과 납기 관리가 가능한지가 첫 번째 관문이다. 금형 제작 후 표면 수작업 마감이라는 방식은 정성스럽지만 속도가 느리다. B2B 납품이나 대형 유통망 입점을 노리는 2차년도 계획은, 1차년도 생산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수표가 된다. 두 번째는 아세아시멘트와의 협력 관계를 어떻게 제도화하느냐다. 계획서엔 "협력을 통해"라는 표현이 반복되지만, 구체적인 MOU나 계약 구조가 명시되지 않았다. 선의에 기댄 협력은 담당자가 바뀌는 순간 무너진다.

마을기업이 살아남는 조건

행정안전부 마을기업 지정을 받으면 3년간 최대 1억원, 예비 단계에서도 선지원이 있다. 재정 지원은 입구는 넓지만 출구가 좁다. 3년이 지나 자립하지 못한 마을기업이 어떻게 되는지 우리는 이미 여러 사례로 알고 있다.

이 계획서가 다른 이유는 지원이 끊겨도 굴러갈 수 있는 최소 축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시멘트라는 재료, 공장이라는 파트너, 공장 근무 경험을 가진 주민이라는 핵심 역량. 이 세 가지가 한 마을 안에 있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제천시 입장에서도 이 사업은 두 가지 정책 과제를 동시에 해소한다. 혐오시설 인근 주민 불만 완화, 그리고 고령층 일자리 창출. 행정이 할 일은 마을기업 지정 심사를 밀어주는 것이 아니라, 아세아시멘트와의 협력 협약이 실질적 내용을 담도록 중간에서 조율하는 것이다.

화분 하나가 마을 하나를 바꾸지는 않는다. 하지만 화분을 만들고 식물을 가꾸며 마을에 생기를 만들고 마을이 가꿔진다면 그다음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게 마을기업의 본질이고, 입석마을이 시멘트회사와 상생하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라 생각된다.

도시경영학적 관점

이 사업의 강점은 구조에 있다. 원자재를 공장에서 지원받고, 공장 근무 경험이 있는 고령 인력이 생산을 맡고, 공공 보조금이 마중물 역할을 하는 조합은 흔하지 않다. 공공 자원이 최소화되는 구조라기보다, 민간 자산이 이미 있는 자리에 공공이 들어오는 구조에 가깝다.

이 구조가 3년간 버텨낼 수 있느냐는 결국 판로에 달려 있다. 지역 로컬숍에서 시작해 온라인으로 확장하는 것이 현실적이지만, 그 첫 단계에서 수량과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초고령 생산 인력 구조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다. 계획서가 설명하는 것보다, 그 현실이 더 무겁다.

🏠 홈 소개 연구 칼럼 제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