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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록

셔틀콕이 그리는 포물선

2026-06-17 에세이육아일상

중1 아들과 배드민턴을 시작한 게 벌써 몇 달째다. 처음엔 '폰 좀 내려놓게 하려고'라는, 꽤 계산적인 동기에서 시작했다. 학교에서도 몇 번 지적을 받았다. 수업 시간에 몰래, 쉬는 시간엔 대놓고. 타이르고, 혼내고, 규칙을 만들어봤지만 아이의 손은 어느새 폰을 만지작거린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배드민턴이었다. 운동을 빌미로 폰을 멀리하게 하고, 그 시간만큼이라도 내 옆에 두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나니 셔틀콕은 내 마음대로 날아가지 않았고, 그 어설픈 랠리를 보며 우리는 서로를 놀리기 바빴다.

배드민턴이 '수단'이라는 생각은 서너 번의 랠리 안에 흐지부지됐다. 콕을 주고받는 동안 우리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말이 많을 때보다 더 많은 것이 오갔다. 아이가 스매시를 성공시켰을 때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라든지, 내가 헛스윙을 했을 때 과장되게 탄식하는 몸짓이라든지. 언어보다 빠른 것들이 코트 위를 오갔다.

아들 키우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나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쪽이다. 그런데 코트 위에서 잠깐은, '어렵다'는 말보다 '모른다'는 말이 더 정확하게 느껴진다. 이 아이가 왜 저 화면 안에서 그토록 무언가를 찾는지, 학교가 왜 그렇게 숨막히는지, 어른들이 정해놓은 '올바른 시간 쓰기'가 얼마나 낯선지. 나는 잘 모른다.

다만 오늘도 채비를 하면서 원우가 내가 말하기도 전에 먼저 가방을 들었다. 작은 일이지만, 그걸로 충분하다 싶었다. 셔틀콕 하나가 그리는 포물선만큼 우리가 가까워지고 있다면, 이 서툰 방법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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