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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정책

간판을 바꾸면 도시경관이 달라진다

2026-06-21 도시경관지방행정행정혁신

제천시에는 지금도 낡고 위험한 간판과 무분별한 스티커들이 즐비한 거리가 적지 않다. 도심 상가 밀집 지역을 걷다 보면 크기와 색상, 재질이 제각각인 간판들이 오래된 건물 외벽을 뒤덮고 있고, 녹슨 철재 지지대와 끊어진 조명 전선이 그대로 방치된 곳도 눈에 띈다. 오래전에 문을 닫은 상가들도 낡은 간판이 그대로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도시경관을 말하기 전에, 안전의 문제다.

해마다 행정안전부와 충청북도가 지원하는 가로환경 개선사업(일명 간판정비사업)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수단이다. 노후·불법·방치 간판을 정비하고 통일된 또는 깔끔한 디자인 기준을 적용해 거리 전체의 미관을 끌어올리는 사업이다. 전국 곳곳에서 시행된 결과는 분명하다. 정비 전과 후 사진 한 장이면 설명이 끝난다. 복잡하게 뒤엉켰던 간판들이 정돈되고, 보행자의 시야가 열리며, 그 거리는 사람이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바뀐다.

그런데 제천시는 이 사업에 손을 내밀지 않고 있다. 정확히는, 손을 뗀 지 오래다.

이유는 행정 내부에 있다. 십수년 전, 간판정비 보조사업 추진 과정에서 불거진 민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사업에 참여했던 옥외광고업체들 사이에서 부가세 귀속과 정산을 둘러싼 갈등이 생겼고, 그 과정에서 담당 공무원이 검찰 고발을 당하고 민원인 이었던 전 옥외광고협회장은 수년에 걸쳐 시청과 세무서, 주변 광고업자들을 상대로 싸움을 이어갔다. 그러다 전회장의 뇌출혈, 이혼, 가족관계 파탄으로 이어진 한 개인의 비극이 사업 자체에 대한 트라우마로 굳어진 것이다.

이제는 갈등이 대부분 해소됐지만, 제천시는 여전히 해당 사업을 기피한다. 누군가 먼저 나서지 않는 한, 공모사업 신청서를 쓸 사람이 없다. 한 번의 나쁜 경험이 도시 전체의 가능성을 막아놓은 셈이다.

이것은 비단 제천만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지방 행정 현장에서 흔히 나타나는 패턴에 가깝다. 사업의 좋고 나쁨과 관계없이, 과거의 민원이나 갈등 경험이 행정 의지를 위축시킨다. 담당자는 "또 문제가 생기면 내가 다 뒤집어쓴다"는 두려움 앞에서 조용히 있는 쪽을 선택한다. 성과는 없어도 책임도 없다. 그것이 지금 제천 거리의 간판들이 그대로인 이유다.

냉정하게 돌아보면, 과거의 문제는 사업 자체의 결함이 아니었다. 사업비 정산 방식, 참여업체 관리, 세금 귀속 주체를 명확히 하지 않았던 행정 설계의 미비였다. 그 교훈을 살려 더 촘촘한 사업 기준을 만들면 된다.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사업을 포기하는 것은, 넘어진 자리에서 영영 일어나지 않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제천의 도심은 지금 기회를 잃고 있다. 관광도시를 표방하면서 관문 거리의 오래된 간판은 방치되어 있고, 의림지나 청풍호로 향하는 길목의 경관은 우후죽순 설치된 불법광고물이 난립해 있다. 10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간판 하나가 도시 브랜드를 만들지는 않지만, 어지러운 간판이나 광고물은 도시 이미지를 분명히 끌어내린다.

사업 구조를 다듬고, 참여 업체와의 관계를 투명하게 설계하고, 지역 상인들과 충분히 소통하면서 신청을 준비하는 것. 과거의 상처를 계속 안고 있을 것이냐, 그 상처에서 배운 기준으로 다시 시작할 것이냐. 그 선택이 제천의 거리 풍경을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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