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이 오히려 채워준다.
어릴 때 집집마다 딱 한대씩 있던 텔레비전은 어른들의 것이었다. 뉴스가 끝나면 채널이 바뀌고, 보고 싶은 프로그램은 어른들이 자리를 비울 때만 볼 수 있었다. 그것도 오후 9시가 넘어가면 발소리에 귀를 세우고, 현관문 소리가 들리면 재빨리 티비를 끄고 자는 척 하며 누워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긴장감이 묘하게 그립다. 당시 좋아하던 "전격 Z 작전", "주말의 명화" 같은 프로그램을 보려고 눈치를 보고, 주말 아침에 방영하던 만화를 보려고 스스로 눈을 뜨던 그 시간이, 나도 모르게 그리울 때가 있다.
원하는 것이 바로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 그것을 얻으려면 기다리거나, 참거나, 눈치를 봐야 한다는 감각. 그게 결핍이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그 결핍이 많이 부족하다. 아니 없다.
쿠팡에서 주문한 물건이 불과 몇 시간 만에 문 앞에 와 있는 걸 보며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참 편하고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이런 세상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기다림'이란 감각이 어떻게 형성될까 싶다. 먹고 싶은 것은 앱 하나로, 보고 싶은 것은 스크롤 한 번으로, 지루하면 유튜브나 숏폼·릴스가 무한대로 채워준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경험 자체가 희귀해졌다.
불편함을 견디는 능력,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다른 무언가를 먼저 감수하는 능력. 그것이 충분히 자라지 못한 채 커가는 듯하다.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 기다릴 이유가 없는 환경이 그렇게 만드는 것에 가깝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아이들에게 무엇이든 해주고 싶은 마음은, 내가 그러지 못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일 수 있다. 그 마음이 지나쳐 원하는 것은 다 줘야 한다는 방향으로 기울면, 나는 아이들에게 기다림을 경험할 기회를 빼앗는 부모가 된다. 채워주는 것과 기다리게 하는 것 사이 어딘가에 균형이 있을 텐데, 그 선을 지키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결핍은 모자란 것이 아니다. 원하는 것이 아직 내 손에 없다는 사실을 감당하는 연습이다. 그 연습이 쌓여야 나중에 더 크게 기다릴 수 있다. 취업이 안 될 때, 사랑이 늦게 올 때, 직장생활에서 노력한 것이 당장 결과로 나타나지 않을 때. 인생에서 진짜 기다림들은 훨씬 길고 무거운데, 그때 버티는 힘은 어린 시절 몰래 텔레비전을 보던 그 사소한 기다림들에서, 조금씩 자라난 것인지도 모른다.